수치를 낫게 하는 은혜

수치를 낫게 하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셨으며 인정해 주심으로써, 나라는 사람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입니다. 내 안에 죄의 영향력으로 자리잡은 수치심은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 안에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 숨기고 싶은 부분을 만들며, 그 부분이 점점 더 강하게 나 스스로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 작용하게 되어 마침내 일종의 자기 분열적 나, 즉 내가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나와 내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나를 만들어냅니다. 수치를 낫게 하는 은혜는 이런 자기 분열적인 나에 대한 관점 때문에 내 안에 생기는 상처와 파열음을 치유합니다. 이 은혜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는 것이 John A. Forrester의 수치를 낫게 하는 은혜(Grace for Shame)의 내용 전부입니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주장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고 해도, 각 책마다 특징적인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책도 물론 그렇습니다. 일단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수치에 대한 개론적인 이해(1장)와 함께 왜, 어떻게 수치가 서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감정이 되었는가(2장)을 다룹니다. 서평자 개인적으로는 2장에서 다루는 설명이 이제껏 서평해왔던 책들에서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2장에서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2부에서는 수치를 주요 관점으로 잡고 성경을 읽어 나갑니다. 3장에서는 신.구약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수치를 성경을 읽어내는데 중요한 코드로 잡게 된 역사를 개론적으로 살펴보고, 이후에는 창세기를 자세하게 읽으면서 왜 수치로 성경을 읽는 것이 성경 자체가 가진 관점이며, 따라서 가장 자연스러운 관점 중에 하나인지를 역설합니다. 4장에서는 성경 내러티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삶이 어떻게 수치를 제거하는지를 해당 부분을 읽어가면서 다룹니다. 마지막 3부는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부와 마찬가지로 수치가 왜 기독교 사역에서 중요하게 되었는지를 상황적인 차원에서 다루는데,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또 크게 도움이 될 부분은 목회자의 성화라는 차원에서 수치를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장에서는 목회자가 교육과 설교,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수치심에 사로잡힌 회중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6장에서는 목회자 스스로가 어떻게 회중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치심이라는 짐을 회복시키는 길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평자 개인적으로는 6장의 내용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라는 맥락 안에서는 목회자가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갖게 된 수치를 회복하는 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고, 오히려 목회자의 수치가 더욱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신앙 교육에 (특히 목회자들의 신앙 교육에) 헌신한 사람으로서, 더욱 크게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책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이 책은 하나의 큰 선행연구 검토(Literature Review)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존의 연구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 기존의 연구를 잘 정리하고 조사한 것들을 자세하게 나열한다는 면에서는 수치라는 주제를 처음 접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하지만 이미 출간된 책이 선행연구 검토처럼 읽힌다는 말은 다른 면에서 보면 저자가 펼치는 주장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잘 펼쳐내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책들이 주장하는 바를 먼저 밝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정 속에서 필요할 경우에 관련 서적이나 아티클을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주장에 힘을 싣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반면,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약간 두서 없어 보이는 면이 많았습니다. 인용하는 자료들이 굉장히 풍부하고, 또 도움이 될 만한 중요한 자료들인데, 책이 어떤 주장을 펼치고자 하는 것인지가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말도 아니고, 많은 자료의 나열에 그친다는 말도 아닙니다. 특별히 마지막 3부의 경우 주장하는 바도 확실하고, 관련 자료의 나열과 배치도 적절합니다. 하지만 1부와 2부에서는 그런 면이 자료의 풍부함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는 것이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중요한 통찰 세가지를 던져줍니다. 첫번째로, 현대 사회에서 수치가 왜 중요하게 되었는지를 주장하는 부분에서, 현대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거대 서사(meta-narrative)가 사라지게 되면서 사회적 단위가 여러 개의 작은 공동체 집단으로 나뉘어지게 되었고, 교회 또한 운영되는 방식이라는 차원에서는 (신학적으로 교회가 어떠한 공동체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 말고) 그런 작은 공동체 중에 하나이고, 작은 공동체에서는 결국 법적인 정의나 원칙 때문에 갈등이 생기게 되기 보다는, A가 B의 명예를 (의도해서, 혹은 의도치 않게) 깎아내리게 되어 (즉 관계에서 생기는 수치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빈도상으로 많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작은 공동체 내에서의 인간 관계에서는 정의나 원칙보다는, 누가 내 명예를 지켜주고, 내 가치를 인정해주느냐, 누가 나를 깔아 뭉개고 나에게 수치심을 주느냐가 관계를 유지하는 더 중요한 원리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Forrester는 이런 현상을 retribalizing of society(사회의 재부족화)라고 부릅니다. 교회처럼, 특별히 군소 교회처럼 작은 공동체에서는 정의나 원칙보다는, 명예나 수치가 더 관계를 유지하고 흥왕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며, 이러한 통찰은 곧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큰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그러한 시사점 중 한가지는 기존의 법정이나 재판 이미지를 통해서 구축되어 온 신학이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인간 관계의 갈등, 그리고 교회 이외의 다른 공동체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에 대해서 별로 해줄 말이 없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런 재발견은 곧바로 명예-수치 코드를 기반으로 하는 신학을 재구축해야 할 필요를 강력하게 역설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 책은 이미 밝힌 대로 목회자의 수치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특별히 6장에서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6장은 한국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특히 대형 교회,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잘 적응하고 성공적인 목회를 해나갈 수 있는 목회자들 중에 수치심에 대해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음을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교회의 목회자들은 많은 경우 진정한 관계를 맺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또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한 인간으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바라보기 보다는, 교회에서의 사역을 일 중심, 과업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향이 짙어지는데, 여기에는 교회 자체의 구조적 문화가 일조하는 면도 있지만, 목회자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내면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있는 수치를 덮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일에 집중하고 과업을 많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는 단순히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대형 교회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모두 다 내적인 수치심에 사로잡혀 과업과 일에만 충성하는 존재들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대형 교회가 가진 구조적 문화와 과업을 중시하는 성향이 수치를 덮으려고 일에 집중하는 목회자들을 생산해내기 좋은 구조이며, 그런 구조를 목회자들 스스로가 깨닫고 회복의 길로 가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 입니다. 초점은 회복에 있지, 비난이나 비판에 있지 않습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평자에게 개인적으로 또 와 닿았던 점 하나는, 저자가 완벽주의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었습니다. 완벽주의는 (더군다나 목회자의 완벽주의는) 열이면 열 거의 모두 수치심으로 직결되는데, 그 까닭은 완벽주의란 자기 스스로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을 닥달하고 스스로 수치를 준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가 이런 완벽주의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성향이라고 정의하고, 우리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 부족한 면이 있고, 완벽해질 수 없으며, 약한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피조물의 피조물됨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로 풀어내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교리적인 설명이며, 하기에 따라서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설명으로 들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기 위해서 얼마나 복잡한 철학적 전통을 가지고 설명해 왔는지 모릅니다. 서평자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바로 그런 복잡하고 추상적인 교리가 아주 실제적인 수치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가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이유들 때문에, 서평자는 이 책을 특별히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 목회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자신 또한 목회자이자 농부로서,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수치의 문제를 적어도 인식을 하고 있어야 사역을 할 때 수치 때문에 생기는 쓴 뿌리를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교회 공동체 전체를 망치는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신학교에서도 꼭 읽혀야 할 책이라고 보며, 특히 번역이 되면 정말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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