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의 영혼

수치, 신경 생물학,그리고 성경 내러티브의 실천적 통합

곧 서평하게 될 Ministering in Honor-Shame Cultures의 저자인 중앙 아시아의 선교사 Jayson Georges에 의하면 수치는 공포, 죄책과 함께 죄가 인간에게 끼치는 세가지 영향력 중에 하나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서구 신학은 이제까지 죄책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서 모든 논의를 풀어 왔습니다. 지나치게 죄책에 초점을 맞추는 신학은 내가 한 일에 대한 응보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결해주셨다고 말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이 되기 쉬우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강조하다보니 수직적인 관계에 국한된 신학적 작업으로 멈추게 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수치는 다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죄책은 내가 한 일에 대한 반응인 반면, 수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반응입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수치는 당연히 하나님을 비롯한 주변의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공동체적이며 이웃과의 관계를 저절로 고려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의 영향력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하심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죄책 뿐만 아니라 수치에 관해서도 신학적 작업을 좀 더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서구 신학은, 특별히 제가 속한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애석하게도 죄책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미 서구 사회도 죄책보다는 수치가 더 지배적인 감정적 정서(affect)로 바뀌었다는 연구나 보고들이 꽤나 많음에도, 신학은 여전히 죄책을 강조하는데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학문적으로는 Ruth Leysfrom Guilt to Shame같은 책을 참조하시면 알게 되며, 대중적으로는 휴스턴 대학의 임상 사회복지 학자 Brenė Brown의 수치에 관한 저작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드러납니다.)

이런 때에 신앙인이자 정신과 의사인 Curt Thompson이 자신의 임상 경험과 신경 생물학적 통찰, 그리고 성경 내러티브에 대한 자세한 읽기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풀어낸 수치의 영혼(The Soul of Shame)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참 고무적입니다. 이 책은 이미 2015년 Gospel Coalition의 올해의 책에 뽑혔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내용적인 면에서도 검증이 잘 된 책입니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저같은 사람이 보기에 신학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면이 물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장점이 많은 책입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에서는 수치에 대한 정의와 일반론적인 해설을, 2장과 3장에서는 신경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수치가 우리 뇌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며, 그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악화되는지, 또 그런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어서 4장과 5장에서는 내러티브의 중요성, 특히 우리 삶의 큰 그림으로서의 성경 내러티브가 어떻게 수치를 없애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6장과 7장, 8장에서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로서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서로서로에게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고백하는 것이 어떻게 수치를 없애는지에 대해서 다루며,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창의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 수치를 없애는 것이 왜 필요 조건이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선작업인지에 대해서 다룹니다.

서평자로서 저는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을 실천적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내러티브와 신경 생물학, 그리고 수치에 대한 심리학/정신 의학적 연구를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통합을 꽤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Thompson은 신경 생물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수치를 느낄 때마다 우리의 뇌를 연결시키는 뉴런 회로망은 매번 끊어지게 되고, 그러한 끊어짐은 우리 안에 일어나는 자기 분열(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인간이로다라고 했던, 죄를 짓지 않고자 하지만 여전히 죄를 짓게 되는 그런 자기 분열)과 함께 부정적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우리를 더욱 더 분열된 존재로 만들게 되는데, 그러한 자기 분열은 더 나아가서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Thompson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크게 신경 생물학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과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 두가지가 있습니다. 신경 생물학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은 우리가 수치심을 느낄 때마다 수치심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경우 단순히 이렇게 수치를 느끼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기만 해도 끊겼던 뉴런 회로망이 다시 연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경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을 가지고 있고,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또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어떤 습관을 가지게 되는지에 따라서 뇌가 계속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수치가 우리를 찾아올 때마다 그것이 수치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끊어진 뉴런 회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고 Thompson은 말합니다. 이런 첫번째 해결책이 자연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야기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하나의 흐름을 가진 줄거리로 풀어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며, 우리의 정체성은 그 이야기를 따라서 형성이 되게 되는데, Thompson은 바로 이런 면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이느냐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Thompson에 의하면 성경의 내러티브는 수치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진화 생물학적인 내러티브보다는 훨씬 더 나은 내러티브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내러티브는 수치가 그 나름의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내러티브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 내러티브 안에서 이해하면 할수록 수치를 소멸시키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아울러서 Thompson은 공동체 안에서 수치의 은밀한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서로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수치를 해결해내는 두번째 방책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Thompson의 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치를 단순히 중립적인 감정적 정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주술화(re-enchantment: 신비한 현상이나 영적인 세계의 존재를 믿는 것: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이전 서평인 리차드 벡의 악마 다시 살려내기를 참조하세요)된 세상 속에서 악한 세력이 사용하는 무기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얼핏 보면 무신론의 선두주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창안한 심리 분석,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주장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 과학 주의에 기반한 분야인 정신 의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이처럼 재주술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진 장점은 Thompson이 임상에서 경험한 수많은 케이스들을 설명하면서 자칫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신경 생물학과 정신의학, 그리고 성경 신학의 통찰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참고 서적은 20권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Thompson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한 임상 케이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면에서 충분히 예리하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물론 Thompson이 직업 신학자가 아니기에 그런 면을 기대한다는 것은 신학자에게 신경 생물학적인 예리한 통찰을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불합리한 일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작업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저같은 신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더 해나가야겠지요. 좋은 의미에서의 학제적 분업이 일어날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제가 가진 수치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고, 여러 면에서 수치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크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Thompson이 수치를 “나 자신을 무력하게 느끼게 만들거나 무언가 더 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상황에 처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적 정서”라고 정의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만약 수치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치에 직접적인 치료약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들 또한 동일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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