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사면

엘사 타메즈(Elsa Tamez), 그리고 칭의 교리에 대한 현대적 해석

교리 논쟁은 종종 교리의 과거적 양태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리 논쟁에 참여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현대에 대한 학문적 관심보다는, 과거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풀어내는 사람들 (교회사학자, 역사학자, 성경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로 과거의 텍스트를 그 과거성 자체 안에서 연구하며 그러한 과거성이 과거에 어떤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찾아내는데 주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칭의 논쟁 또한 안타깝게도 이런 맥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의 칭의 논쟁 또한 칭의 교리가 현대인의 삶에 가지는 적실성이란 어떤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제 2 성전 유대교를 둘러싸고 한 쪽에서는 유대교가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생각했던 율법적인 종교가 아니라는데,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이미 많은 부분 현대적 적실성을 잃어버린 종교 개혁의 칭의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데 그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이런 논쟁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칭의 교리는 과연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질문으로 대접 받지조차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 출신의 해방 신학자이자 성경 학자인 엘사 타메즈(Elsa Tamez)는 이 책에서 이 질문에 천착합니다. 그녀는 우선 칭의적 교리와 연결되어있는 3가지의 지배적 메타포-죄의 용서, 하나님과의 화해, 죄책으로부터의 자유-가 모두 현대적으로는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그녀는 자신이 속한 라틴 아메리카라는 사회 속에서, 또 그 중에서도 자신이 집중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상황에서 칭의 교리가 지금의 지배적 메타포를 통해서 전해질 때는 득보다는 실이 많음을 짚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타메즈가 죄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누구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느냐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홍콩 출신의 침례교 평신도 선교운동가 레이먼드 풍(Raymond Fund)의 말을 빌어서 그녀는 죄에 대한 개념이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는 것”에만 집중했었고, 죄를 통해서 실제적인 압박과 죽음의 결과를 맞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방관했음을 지적합니다. 즉, 죄란 단순히 사람이 행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을 넘어서는 어떤 세력이고 힘이며, 그러한 세력과 힘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계를 통해서 사람과 사회를 망가뜨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타메즈가 특히 주목하는 피해자 집단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입니다. 능력 중심 주의, 실력 중심 주의를 체제 운영의 만트라로 삼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그러면 누가 죄인 취급을 받게 될까요? 당연히 능력이 없어서 도태된 사람들, 실력이 없어서 사회 구석으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타메즈는 자신의 성경 신학적 전문성을 살려서 특히 바울의 로마서가 얘기하는 죄와 죄인들이 이러한 현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신학적 용어는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이라는 헬라어인데, 이 단어는 전통적으로 속죄 제물과 속죄 제사 양쪽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타메즈는 이 단어를 둘러싼 그 모든 복잡한 논쟁은 차치하고, 힐라스테리온이 로마서 3:25라는 한 구절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귀결되어버린 대부분의 서구 신학의 풍조에 대해서 한탄하면서, 예수의 속죄 제물 되심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 사역의 (또 히브리 성경과의 연결성 속에서의) 전체적 관점의 일부로서 다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로마 체체가 죄없는 희생자들을 수없이 양산했듯이 예수 또한 그러한 죄없는 희생자, 특별히 당신의 희생을 통해서 그 모든 희생자들(현대 사회 속에서는 이미 언급한대로 능력이 없어서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러한 희생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에 방점을 찍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그 의도나 신학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타메즈의 이런 관점이 정당한 신학적 관점이 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칭의 교리를 좀 더 거시적인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바라보게 되면, 이 교리가 현대인들 모두에게,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명확해집니다. 타메즈는 선언합니다. 칭의 교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고귀함과 가치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확증이 현대 사회에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미 말했다시피 현대 사회가 능력 중심 주의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능력 중심 주의의 사회는 각 개인들에게 “너를 팔아라, 너의 능력을 보여주어라”고 호소합니다. 아니 강제합니다. 각 개인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각 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서 누구는 귀하게, 누구는 천하게 대접을 받게 됩니다. 타메즈는 바로 현대 사회의 이런 점을 칭의 교리가 파고 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칭의 교리가 가진 이런 점을 제대로 선포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면서 책을 마칩니다.

일단 이미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은 칭의 교리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의 시도 그 자체입니다. 학자들이 기독교 교리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서 관심을 멀리하는 사이에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별 관련이 없는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도록 강압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타메즈의 시도는 굉장히 신선합니다. 또한 타메즈의 이런 시도를 단순히 한 해방 신학자의 제한적인 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전에 서평했던 팀 켈러 또한 자신의 책 관대한 정의(Generous Justice)에서 칭의 교리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동일하게 진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메즈가 진보 진영에, 켈러가 보수 진영에 속한 사람임을 고려할 때, 칭의 교리가 적실성을 잃었다는 진단이 단순히 진보적인 진영에서 나오는 균형을 잃은 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타메즈가 칭의 교리에 대한 3가지 지배적 메타포가 왜 적실성을 잃었는지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파고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책 후반부에 성경이 사용하는 희생과 제사 용어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독자들에게 왜 3가지 지배적 메타포가 힘을 잃었는지, 어떤 면이 부족한 것인지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책이 좀 더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희생과 제자 용어들에 대한 분석을 전반부로 끌어와서 칭의의 지배적 메타포에 대한 분석과 함께 실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교리 해석에 관한 한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과연 교리가 현대적인 삶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 물어야 할 질문이며 더 깊이 파고들어가야 할 질문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학자들이 이런 시도를 통해서 각각의 교리들을 현대 상황에 대한 통찰과 함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LIKEELL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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